

쏴아아-,
세찬 빗소리와 함께 눅눅한 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좋은 아침. 인어에게 말을 거는 것은 재희의 오랜 일이었다. 수조에 손을 대고 머리를 대면 인어는 그의 머리에 손을 댄다. 비록 유리를 사이에 두고 있으나 오래도록 인사해온 방법은 변치 않는다. 유독 비가 오는 날이면 재희는 오래 손과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처럼 그렇게.
한적한 아쿠아리움의 단 하나의 재산인 인어를 관리하는 것은 단 하나의 관리인이자 단 한 명의 직원인 재희가 당연히도 맡게 되었다. 인어의 이름은 A. 지어준 이는 알지 못했으나 이름을 바꾸지 않고 계속 불러왔다. 자신이 작명 센스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본래의 이름은 영원해야한다는 불문율을 숨겼다. 이름의 중요성을 깊이 알고 있었다. 그런 재희의 이름은 맑을 재에 숨 희를 썼다. 맑은 숨. 인어의 숨과도 닿아있는 이름이었다. 재희는 자신의 이름을 사랑했고, 인어를 사랑했고, 때문에 여기에 남았다.
그날은 유독 비가 세게 내렸다. 그에게 물비린내는 역한 냄새가 아니었다. 재희는 옷을 갈아입고 A가 있는 수조 속으로 들어갔다. 아무 장비 없이 들어가는 것은 A와 재희의 약속이다.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겠다던 약속. 재희는 맨 몸으로 A의 수조에 들어가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약속은 재희에게 그런 것이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꼭 지켜야하는, 어겨서는 안 되는 것. 사람들과는 그렇게 사는 것이 힘들었다. 하얀 거짓말을 알고 있어? 하는 물음에 눈물을 떨구던 그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는 것은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재희가 세상을 버린 것일까, 세상이 재희를 버린 것일까. 세상이 재희를 버렸대도 그에겐 A가 있었다. A와는 자주 입을 맞췄다. 볼을 쓰다듬었다. 재희는 A가 인간이기를 바라면서도 인간이 아니기를 바랐다. 인간인 순간 너도 거짓을 입에 담겠지. 하지만 인간이 아닌 너를 어떻게 온전히 사랑하겠니. 재희는 A와의 입맞춤을 그저 숨을 나누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늘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사랑할 것만 같았다. 재희에게 남은 것은 A, A에게 남은 것은 재희 뿐이었으므로.
단 하나가 되는 것은 참 찬란한 일이다. 인어와 인간에게는 찬란함이 형벌 같은 날들이 있었다. 해로 인해 죽은 자와, 빛에 의해 열사한 자. 하지만 세상이 빛을 잃은 지금 빛은 희망과도 같았다. 재희는 그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A에게는 안도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A는 자신이 빛으로 인해 죽어갈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죽음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A는 이미 끝과 가까워지고 있었고 재희와 빛 아래에서 숨을 나누는 것은 독과도 같았다.
재희야, 나는 네 이름을 입에 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A는 그 문장을 얼마나 오래도록 품었는지 모른다. 며칠간 몸이 좋지 않은 것을 숨겼던 A는 드디어 재희에게 입을 열었다. 손짓과 입을 몇 번 뻐끔거리는 것으로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거품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렸다. 빛이 내리는 수조 안에 인어 하나와 사람 하나. 손짓하는 인어와 눈을 가리는 인간. 인어는 자신이 화할 것을 앎에도 인간을 안아주었다.
A, 왜 나는 발전 없는 사랑을 할까. 재희는 그 날 수조를 떠나지도 못한 채 달빛이 수조에 가득 찼다가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머물러있었다. 이제 수조는 비었고 빛조차 차지 못할 것 같았다. 재희는 비가 세게 내리는 새벽, 우산도 없이 일찍 집에 돌아갔다가 편지를 한아름 든 채로 다시 수조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나씩 편지를 뜯어 읽기 시작했다. 사랑의 고백이었으며, 진실의 회개이기도 했다.
그 다음날 모든 편지를 뜯어본 재희는 A에게 쓰는 편지를 모두 물로 보내줬다. 그 날은 A가 죽은 지 이틀 째 되는 날이었고, 재희의 사랑이 단절 된 날이었다. 빈 수조에 발만 담근 채로 편지를 읽어주며 띄워 보내는 이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졌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A. 우리가 숨을 나누는 것이 단순히 호흡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하지만 나는 네게 거짓을 말 할 수 없어 침묵을 택했다. 이제야 네게 이렇게 글을 써. 내 오랜 버릇으로 오래도록 후회할 것 같은 너를 보낸다.
나는 그 끝이 절망이나 죽음이라는 것을 왜 더 빨리 알지 못했을까. 모든 편지를 빈 수조에 띄워 보낸 재희는 자신의 몸마저 띄워 보냈다.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았다.
시간이 함께 죽은 것처럼 멈추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