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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쏴아아아ㅡ 세찬 빗소리와 함께 눅눅한 물비린내가 코 끝을 스쳤다. 그래, 오늘도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학교는 오늘도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출석 일수가 부족해 다음 학년으로 갈 수 없다는 둥 자꾸 그러면 부모님이랑 통화하는 수밖에 없다는 둥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나 나는 학교에 갈 마음이 없다. 이 비가 그친다면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 비는 아주 오래 내리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정리하자면 내가 학교에 가지 않은 지도, 이 비가 멈추지 않고 내린 지도 벌써 석 달째다.

 

  그날 나는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딱히 불행한 일이 있지도 않았는데 우울함이 나를 집어삼켰다. 해야 하는 일의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걸 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시들어갔다. 내일은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해야 할 일을 적었던 쪽지는 벌써 2주가 넘게 내 책상에 붙어있었다. 이제 슬슬 접착력이 약해져서 계속 떨어지면서도 마치 내 부담을 더 지우려 노력하는 것처럼 내 눈에 들었다. 그 일들은 또 마음먹고 하면 꽤 쉬운 일들이라, 더더욱 내가 게으른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런 생각을 수십 번 반복하면서도 나는 그 일을 하지는 않았다.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말들이 무력감을 이기지 못하고 입속에서 맴돌다 그대로 쌓였다.

 

  차라리 비라도 와서 휴교라도 했으면.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 지나가듯 가벼운 소원과 함께 잠이 든 나는, 얼굴 위로 튀는 물방울들 때문에 잠에서 깼다. 밖에서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휴대전화 시계를 보니 벌써 7시가 넘었는데 밖이 깜깜하기 그지없었다. 긴급 재난 문자로 서울에 호우 경보가 내려졌으니 외출을 조심하라는 말이 도착해있었다. 신이 내 소원을 들어준 걸까? 이 정도라면 정말 휴교할지도 몰라. 그런 알량한 기대는 완벽히 빗나가고 등교 시간이 30분 남은 8시에도 학교에선 아무런 문자도 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뭘 기대한 걸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부랴부랴 교복을 입고 현관문을 열었다. 순간 눅눅한 물비린내와 습기가 느껴졌다. 나갈 수 없다. 아니, 나가고 싶지 않다. 열었던 문을 닫았다. 오늘은 나가지 말자. 아니, 비가 그치면 오후 교시라도 나가자. 그러면 되지. 무단결석보단 무단 지각이 나으니까.

 

  학교가 끝나는 시간까지 그런 폭우가 내린 것은, 맹세컨대 제 잘못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나름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작은 일탈만으로도 나는 집 안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마치고 마음 놓고 목욕까지 할 수 있었다.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면 자괴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청소를 마쳐 깨끗한 집 안은 잠도 잘 오게 해주었다. 내일은 아주 쾌적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떴더니,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집 안은 에어컨도 틀어져 있고 습기 제거제도 이곳저곳 있으니 습하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 먹는 일은 맨 식빵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서는 것보다 좋았다. 그래. 집 안은 쾌적했고 밖은 찝찝하고 더운 습기 가득했다. 나는 챙겨 입은 교복이 무색하게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밖에서 내리는 것은 비가 아니다.

  내 자괴감 우울 공허 불행 슬픔 비참 그 모든 것이 섞인 무언가였다.

  그러니 나는 저들에게 닿고 싶지 않다. 쾌적한 집 안과 찐득한 밖은 같은 비교 선상에 설 수 없다. 나는 왜 밖으로 굳이 나가야 하는가. 나갈 수 없다. 나가지 않는다. 나의 작고 안락한 궁궐 안에서도 평생 살 수 있는데 내가 무엇 하러 밖으로 나가야 하지? 문을 닫는다. 그렇게 그 문이 영원히 닫히길 소망한다. 전화선을 끊는다. 이제 저 전화가 울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아주 가끔만 창문을 열 것이다. 그러므로 창문을 열 마음이 들기 전까진 커튼을 쳐놓는다. 비가 그치는 날엔 나갈 수 있겠지. 그래, 비가 그치는 날엔…….

     “그러고 보니, 선생님네 반에 등교 거부 학생이 한 명 있지 않아요? 요즘도 그래요?”

     “네. 전화도 안 되고, 집으로 찾아가 봤더니 비가 그치면 가겠다지 뭐예요.”

     “네? 비요? 요즈음 가뭄이라고 비 안 내린 지 벌써 넉 달째인데….”

     “그러게 말이에요. 분명 그냥 핑계일 거예요. 원래도 평범한 애는 아녔었어요.”

 

     쏴아아아ㅡ 세찬 빗소리와 함께 눅눅한 물비린내가 코 끝을 스쳤다. 그래, 오늘도 하늘에서 내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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