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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믿지 못하는 모양이군.”
“아직도 제 꿈에 나오세요?”
“어떻게 해야 믿는 거지?”
“비를 멈추게 해주세요.”
“그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저 부자 되게 해주세요.”
“인간 개인사까지 관여하는 건 권능을 남용하는 일이다.”
“아 아무것도 안 해주면서 뭘 보고 믿으라고요! 꿈에 한 번 나와줬다고 믿고 따르라고요?”
“꼭 눈으로 볼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한 건가? 지금껏 위대한 신의 일을 대신 수행해주었던 이들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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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잠깐 동안 눈 붙였다고 이러기 있기 인가. 씩씩대며 이불을 발로 걷어 차고 일어나 아까 바닥에 구겨 버려놨던 전단지를 북북 찢었다. 이 망할 전단지 때문에 이런 꿈을 꾸는 거야. 한참을 잘게 찢어 놓고서야 분이 풀려 침대에 털썩 앉을 수가 있었다. 그래, 사실대로 말하자면-그리고 이런 말 하면 미친년처럼 보일 걸 안다-며칠 전부터 꿈에 계속 신이라고 하는 작자가 나와서 이 사이비들이 하는 말이 다 맞으며 사람들이 생각보다 냉소적인 태도라 구원에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사이비들 전단지를 자꾸 보다 보니 이런 개꿈을 꾸는구나 싶었지만 하루, 이틀, 일주일이 넘게 계속되자 이젠 불면증에 걸릴 것만 같았다. 결국 컴퓨터를 켜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아무 개인정보나 여러 개 긁어서 쓴 글을 붙여 넣고 전송을 눌렀다. 신이시여 이 스팸 메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적입니다. 이 이상의 일을 원하신다면 제가 메일을 보낸 사람들 꿈에 찾아가서 지랄해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저는 힘이 없어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분께,
안녕하세요 가내는 평안하신지요. 초면에 죄송하지만 지구를 구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돈도 없고 신앙심도 없고 하루 살기 바쁜 대학생에 불과합니다. 뭔가 기적을 일으켜주기를 원하지만 그럴만한 힘도 안 주고 아무런 증거도 안주면서 사람들을 설득하라고 신이 자꾸 시킵니다. 솔직히 요즘 같은 세상에 영상 하나만 떠도 주작이네 뭐네, 하면서 여러 가짜 동영상들을 재생산하는 사람들이 천지인데 증거도 없이 게다가 사이비 사람들의 말이 맞다고 지지하라니 신이 너무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맡은 업무를 당신에게 떠맡기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돈이 아주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아주 높거나 혹은 그 사이비 집단에 소속하신 분이시라면, 축하 드립니다 당신은 사실 이미 죽었고 신이 당신에게 전 인류를 구원할 임무를 주셨습니다. 평소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으셨던 분이라면 몸 바쳐 그 주인공병에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부디 지구를 구해주세요.
익명의 신에게 선택 받은 사람 알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