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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제는 매 해마다 수도에서 이루어지는 정기 축제였다. 해가 바뀌는 첫날이라는 특징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날짜가 변경되는 일도 없고, 각 지방의 영주들도 올라와서 얼굴을 비치는 큰 행사였기에 올해도 어김없이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성에서 열리는 연회 역시 영주와 일가친지, 초대받은 일부 계층의 사람들이 교류를 나누는 자리로 대성황이었다. 술을 마시고 댄스를 즐기는 사람들로 채워진 홀은 새벽으로 시간이 접어들면서 폐막에 가까워질 때까지도 언제나와 같았다. 어디선가 날아든 암기들로 전등이 한꺼번에 깨어져 나가기 전까지는.

 

웅성거리는 소리, 당황해서 소리치는 소리, 유리파편에 맞고 비명 지르는 소리, 삽시간에 어둠에 잠긴 홀은 바로 옆의 상황을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 되었다. 혼란을 틈 타 사람들 사이를 넘나들며 왕가 일족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모여드는 데도 당장 대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적었다. 섬뜩한 살기를 느끼고 어영부영 추격하는 기사들이 있었지만, 정확한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어둠에 눈이 익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디를 막고 어디를 지켜야할지조차 분간이 되질 않았다.

 

이 사태를 짐작하고 있던 사람을 제외하고는.

 

바람을 가르는 기척과 함께 왕의 목으로 날아들던 칼날이 챙하고 튕겨져 나간다. 한 순간의 공방에 연회에 참가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모두의 이목을 모으는 다홍빛 불꽃이 왕의 앞을 지키듯이 선 청년의 몸 주변을 감싸며 오오라를 내고 있었다. 반대로 검에 깃든 서늘한 기운은 차가운 물의 성질을 띄고 있어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명예로운 에버리지원 기사단의 루키, 세이드.”

 

세이드에게서 일렁이는 불꽃을 지표로 하여 왕가를 지키기 위해 기사들이 몰려든다. 오대원소의 마법과 검기를 결합한 검술은 에버리지원 기사단의 유명한 특징이었다. 아직 거짓 공표를 듣지 못한 이들과, 듣기는 했으나 원래 에버리지원의 사람들을 알고 있어 진위를 의심하던 이들이 앞서나와 먼저 등을 맡겼다. 왕가의 수호를 최우선으로 하던 기사들 역시 기꺼이 세이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반란을 꿈꾸는 영주에게 짓밟혀 누명을 뒤집어썼으나, 진실을 알리고 책무를 다 하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선언은 위엄을 갖추지 못했지만 엄숙했고, 이어지는 설명은 연습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듯 미숙했지만 진솔함이 묻어났다. 아직 어설프기만 한 어린 기사가 있는 힘껏 진지하게 외친 전말은, 지목된 영주의 주변을 둘러싸고 지키는 정체불명의 복면부대의 행동에 의해 진실성이 더해졌다. 어둠이 눈에 익어갈 즈음이었고, 적이 누구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된 호위와 기사들에 의해 형세는 완전히 뒤집혔다.

 

 

 

 

 

사건이 벌어졌던 날로부터 아흐레가 지났다. 왕가의 목숨을 노리고 나라를 전복시키려 했던 영주는 결국 처단 당했다. 억울하게 썼던 기사단의 누명도 벗겨졌고, 새로운 영주도 선출되어 정식 위임식까지 이미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에버리지원의 명맥을 잇는 일은 곤란한 시국이었다. 세이드를 제외한 나머지 단원들은 몰살당한 상태에서는 기사단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지경이었으니까. 세이드를 새로운 단장으로 세우기에는 너무 나이도 경험도 적은 신출내기이기도 했고, 세이드 본인도 자신이 그럴만한 그릇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은 새 기사단을 꾸려 승인하고 거기에 세이드가 편입되는 방법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을 거절한 것은 세이드 자신이었다.

 

세이드에게 있어 에버리지원 기사단은 가족의 상징이었다. 올바름을 행하려다가 전멸한 동료들의 깃발이 이대로 사라지는 것을, 그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남아있는 것이 자신뿐이라면, 그는 자신이 에버리지원의 이름을 대표하여 그 명예를 지키고 기리길 희망했다. 투정과도 같은 어린 기사의 요청을 받아들인 왕가는 합의점을 제시했다.

 

에버리지원 기사단을 1인 체제로, 이후 유일한 단원인 세이드가 단장의 자격을 갖출 정도로 성장한다면 마땅한 직위를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기사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 하는 조건으로, 역량을 키우기 위해 소속되는 영지 없이 자유롭게 떠도는 일이 허용되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에버리지원의 명례를 지킬 수 있도록. 그가 바라는 대로 기사단의 명맥을 유지하며 이름을 떨칠 수 있도록.

 

-세상을 돌며 많은 경험을 하고 머물기도 하면서 스스로 딛고 설 땅을 찾아라.

-어느 영지에 들어서도 의와 명예를 지키는 에버리지원의 이름은 인정받을 것이다.

 

국가귀속을 상징하는 문장을 새긴 마력장갑을 왼 손에 끼고서, 반역사건으로 어수선했던 수도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왕에게 들었던 전언을 되새긴다. 무엇을 마주치고,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을 겪게 될 터인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낯설기만 한 홀로여행에 씁쓸함과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해 세이드는 두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아직 가슴을 떠도는 슬픔을 향해 중얼거린다. 조금 더 성장하는 날에 성묘라도 갈게요. 기다려 줘,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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