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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돌아온 단장님은 아무래도 영주가 반란을 일으키려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따라주지 않겠냐고 은근슬쩍 제안해왔지만, 탐탁치 않아하는 기색을 보이자 별다른 미련 없이 물러난 모양이었지만. 전쟁에 동원된다면 죽을 때까지 반역자의 꼬리표가 따라다닐 테고, 본인뿐만 아니라 모든 기사단원의 명예가 걸린 일이었기에 간단히 대답할 수는 없었던 듯했다. 금방 포기한 걸로 봐서는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느낌이라며, 어딘가 찜찜해하던 단장님은 단원들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자와자와한 논의가 이어졌다. 영지의 소속이라곤 하지만, 정확하게는 국가에 충성을 서약하고 각 영지로 임명된 기사단이었기에 영주의 일탈을 막거나 알리는 일도 기사단의 임무였다. 부여된 책임을 배반하고 나라를 뒤엎는 일에 동참한다면 그 불명예는 평생에 걸쳐도 지워지지 않을 터였다. 결론은 수도에 가서 반역을 알리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아무리 직접 언급한 건 아니라지만, 이미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 반란에 찬동하지 않는 기사단을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다고 판단한 우리들은 다 함께 모여서 수도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자주 야외훈련용 아지트로 사용했던 이 오두막으로 집합했던 거였는데.

 

 

 

팬던트의 문양은 틀릴 리 없는 영지의 문양이었다. 기사단의 도움은 처음부터 도외시하고 짠 군단인지, 혹은 처음부터 기사단을 없앨 요량으로 모은 이들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미 덮쳐질 때부터 엄청난 규모였다. 신변이 위험할 거란 예상은 맞았다. 다만 대응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참담한 기분으로 다시 주변을 돌아보면,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가족이자 동료들의 끔찍한 시신들이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개중에는 눈을 뜬 채로 죽은 이도 있어, 하나하나 눈을 감겨주며 다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았다. 너무 세게 씹은 아랫입술이 찢길 것만 같았다.

 

물건을 털어간 것은 아니었기에, 금고에서 휴대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챙긴 청년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비척거리며 현장을 떠났다. 형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누나들이라면. 스승님들은. 단장님은. 이 상황에서 무엇을 했을까. 청년을 움직이는 행동원리는 끝없는 자문이었다. 스스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 살아남은 게 내가 아니라면. 내가 모두의 대신이라면. 무엇을 해야 할까. 놀기 좋아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좋아했고, 내내 바라보며 어설프게나마 따라갔던 기사단의 막내는 이제.

 

로브에 몸을 숨기고서 바지런히 걷고 걸어 영지의 경계에 닿을 즈음에는 날이 기울어있었다. 잠자리를 해결하기 위해 가까운 여관에 짐을 풀고 식당에 내려온 청년은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무엇부터 행동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그 많은 시신을 다 수습할 시간은 없었다. 수습한 묘를 보고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반란군 쪽에서 알아챌 지도 모를 일이었다.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내버려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었다. 살아남았다. 혼자지만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이제 이 생의 의미는.

 

“이봐, 이야기 들었어? 영지의 정식 기사단이 반역을 꾸미다 발각 되서 전부 처형당했다던데.”

“아, 들었지. 기사라는 사람들이 명예도 모르고 말이야. 기사단에서 지내다보면 세상이 전부 자기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구먼. 쯧쯔.”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대신 영주님이 자비를 들여서 다른 기사단을 꾸렸다고 하더니만.”

“기사단이 없어지면 치안이라던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니 말일세. 발 빠르시기도 하지. 영주님이 참 유능하셔.”

 

문득 옆 테이블에서 들려온 대화에 하마터면 청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뻔했다. 그게 아니라고. 우리들은 역모를 꾸미는 영주에게 거꾸로 당했을 뿐이라고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었다. 헛소리에도 도가 있다. 사실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소문에 치를 떤다. 기사로서의 의무를 지키려다 죽어간 동료들이 곡해된 공표로 인해 역적으로 몰리고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지키려 했단 말인가. 추락해버린 우리의 명예는.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심호흡하며 기분을 가라앉힌다. 마침 주방에서 틀어놓은 음악이 느린 템포의 피아노곡이었다. 노래는 빠르고 리듬이 발랄한 쪽을 더 좋아했지만, 흥얼거리며 평온을 찾기에는 오르골처럼 가사가 없거나 단조로운 곡조도 나쁘지 않았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한 검무를 하고 싶었는데. 잡생각을 섞어가며 다시 행동방침으로 의식을 돌린다. …목표는 이미 정해진 상태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지금부터 맞서야 하는 문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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