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품인지 모조품인지는 유전자 검사나 돌리라고 해."
맞는 말이다. 남자는 뜨뜻한 바람이 나오는 히터 쪽으로 몸을 틀며 입을 닫았다. 하세와 남자는 한 다리 건너 오며가며 안면만 익혀둔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그럼에도 이름을 알던 누군가의 실종의 여파는 컸다. 저 멀리서 저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사고가 비웃듯 제 코앞에 민낯을 훅 들이민 날의 기분.
목걸이 매듭은 하세의 이름 글자 그대로를 부호로 나타냈다. 남자는 부호를 읽을 수 있었고, 하세라고 단정 지었다.
"그럼 목걸이는 내가 실험실에 가져가겠네."
배부른 고양이처럼 깍지를 끼고 상황을 관전하던 안경이 탁자 위 목걸이가 든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는 빈 접시가 아쉬운지 상자를 챙기면서도 입맛을 자꾸 다셨다. 푹 잠들기 글러 먹은, 당이 필요한 시기다.
흰족제비는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관은 늘어난 파일의 순서를 재정리 했다.
"난 가서 쉬어야겠어. 결과가 나오는 대로 다시 모이지."
소파의 아늑함도 한껏 날카로워진 흰족제비의 신경을 안정시키지는 못했다.
몇 시간 동안의 구구절절한 사연 풀이 끝에 임시로나마 해방된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서 뻐근해진 다리 관절을 풀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창고를 거쳐 가게 문으로 향했더니 창밖에 억수같이 내리는 비가 여전하다. 남자는 야속한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저마다 우산을 들고 나서는데 꿉꿉하지만 훈훈한 실내에 기껏 말랐던 남자의 겉옷은 다시 젖게 생겼다.
돌아가면 주인을 만난 세탁기는 골골송을 부르겠지. 잠바 깃을 세우고 고개를 숙인 채 빗속으로 걸음을 성큼 내디딘다. 비바람에 신호등이 뿌옇다. 파란불을 기다리는 횡단보도 앞 남자의 머리 위로 누군가 불쑥 우산을 들이밀었다. 남자를 쫓아 나온 더벅머리였다.
"가게 우산인데, 이거 쓰고 가세요."
제 우산은 까페에 있고 비상용 우산이라 괜찮다며 받기 망설이는 남자의 손에 굳이 손잡이를 쥐여준다. 일하러 돌아가야 한다고. 무어라고 웃으며 재잘거리는데...
이상하게도 바짝 붙어선 더벅머리의 속삭임이 귓가에 천둥처럼 웅웅 울린다.
"그 솔개, 2년 전에 죽었잖아요."
남자는 새파랗게 얼어붙었다.
"왜 모른 척하셨어요?"
감춰둔 돌멩이를 지탱하던 줄이 끊어져 심연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솔개 전 수장님."
환청인지 사실이었는지 손에 착 감기는 차가운 우산만 남기고 더벅머리는 가게로 총총 돌아갔다.
비가 내린다. 남자는 펼쳐진 우산을 접어 내렸다. 어린 솔개야 우느냐. 온몸으로 빗줄기를 맞으며 텅 빈 전자담배를 습관처럼 꺼내 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