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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쏴아아아- 세찬 빗소리와 함께 눅눅한 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빛바랜 회색 골목에 고개를 떨구고 선 남자의 가죽 재킷 안에도 물이 흠뻑 들어찼다. 에취, 재채기가 터져 나오는 파리한 입술 사이로 길쭉한 전자 담배를 물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기왕 젖었으니 뛰어갈 필요도 없겠지. 신발 안으로 들어찬 물이 질척거렸다.

 

  장마철에 아침부터 잔뜩 낀 먹구름을 보고도 우산을 챙기지 않는 얼빠진 짓을 한 건 아니었다. 그는 건물을 나서기 전 우산을 도둑맞았다. 깜깜한 하늘만 쳐다보던 누군가가 우산꽂이에 있던 그의 장우산을 빼들고 떠났으리라. 사무실에서 하얀 백지 차트를 띄워놓고 졸던 그는 중요한 연락을 받았으며, 제 우산을 가지러 갔을 때엔 이미 우산 도둑을 알 길이 없었다.

 

  '지금 당장 필요하대. 빨리 와.'

 

  우산 하나를 사러 편의점을 들르자니 제 갈 길과 반대 방향이라 결국 그는 적당히 가까운 거리를 성의껏 걸었다. 급한 쪽이 마중을 나오겠지. 난데없는 30분간의 야외 샤워라니. 축축하게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칼 마냥 착잡하게 가라앉은 기분으로 투덜댄다.

 

  4-5층 정도의 상가 앞에 멈춘 그는 따뜻한 빛이 흘러나오는 유리창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외벽에 좁게 붙은 통로를 조심스레 올랐다. 가게 직원들이 가끔 이용하는 철제 계단에 사람 한 명 분의 무게가 실리자 삐걱임이 요란하다. 1층에서 2층까지는 손님이 한창 붐비는 까페가 관리하고 있었으며 그 위로는 다른 가게와 교습소 등이 있었다.

 

  쾅쾅,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딸깍 손잡이를 돌려 연다.

 

  "왔어요?"

 

  동그란 갈색 더벅머리가 얼굴을 빼꼼 내밀며 그를 반겼다.

 

  -얼른 기어들어 오라고 해.

 

  저 멀리서 재촉하는 칼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전자담배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옷자락을 최대한 쥐어짜 냈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마중 나온 이를 따라 좁은 창고 사이를 지나는 그의 발걸음 뒤로 줄줄 물길이 만들어졌다.

 

  드디어 접이식 의자 중 유일하게 아늑해 보이는 소파가 풍채를 뽐내고 있는 작은 회의실에 당도했다. 2층의 한 부분을 온전히 벽으로 분리해 만든 이 공간은 까페의 창고를 거쳐야만 오갈 수 있었다.

 

  까페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한 쿠키와 타르트를 늘어놓은 원형 테이블 주위로 둘러앉은 세 쌍의 눈이 남자를 향했다. 안내가 끝난 더벅머리는 부담스러운 시선들을 피해 쪼르르 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왜 이렇게 느려 터졌어. 너 올 때까지 찻잔이 몇 번이나 비워졌는지 아냐?"

 

  새하얀 머리카락을 뒤로 깔끔하게 넘긴 이가 파묻히듯 기대있던 소파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남자는 억울한지 웅얼거리다 소파에 놓여있던 가방을 치우며 엉덩이를 붙이려고 했다. 제지만 없었다면.

 

  "너 지금 그 꼴로, 안 돼. 저리가! 저리 가서 앉아! 일부러 이러는 거지? 소파에 곰팡이 슨다고!"

 

  ...쳇. 남자는 밀어내는 손길에 떠밀려 딱딱한 간이의자에 정착했다.

 

  서류 가방에서 납작한 상자를 꺼내는 흰머리, 간식 옆 노란 파일을 늘어놓은 체크 남방, 턱을 괴고 과일을 포크로 찍어 먹던 안경, 이들이 부산스럽게 각자 꺼낼 말을 준비하는 동안 더벅머리만이 그의 안색을 걱정하며 따끈한 머그컵을 건넸다. 조용하고 묵직한 공기가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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