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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ㅡ 세찬 빗소리와 함께 눅눅한 물비린내가 코 끝을 스쳤다. 안온하지만 어딘가 시린 방 안의 공기가 옷깃 안 살결로 파고드는 것을 무거운 머리로나마 감각한다. 저혈압이 있는지라, 상쾌한 아침이란 제게 머나먼 단어이고는 했다. 그렇지만 아무와도 엮이지 않을 날의 아침이란 아무래도 다르다. 다리에 반만 감겨든 얇은 이불의 촉감이 좋아서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주말의 팽만함이 좋아서라도. 조금 더 눈을 감을까 하다가, 이미 한 번 그랬다가 지금에야 도로 눈 떴던 것임을 느즈막히 상기한다. 바쁘게 사는 평일의 제가 멋쩍을 정도로 주말의 저는 푹 뒹굴었으니 이젠 일어나도 좋으리라. 한참 입으로 숨만 뱉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태풍이 온다고 했었나. 일상 속에서 지나가듯 이름을 들었는데 별로 뇌리에 남지는 않았다. 간밤부터 빗줄기 거셌으니 제법 큰 태풍이겠거니. 그래도 결국 끝날 날씨려니. 삶은 계절처럼 반복된다. 어릴 때는 즐겁게 화제 삼았던 소재도 이제는 그럭저럭 시큰둥하다. 부엌에 들어서니 더욱 공기가 찬 감이 있어, 말려 올라갔던 얇은 잠옷의 소매를 끌어내렸다. 식욕이 그다지 없었는데 안 그래도 냉장고에는 별 게 없었다. 며칠씩 묵혀둔 반찬은 있지만 입이 깔끄러운 지금에야 없는 셈 친다. 그나마 탁자에 유통기한이 끝나가는 식빵이 보여 그대로 꺼내 하나를 입에 물었다. 잼이 다 떨어졌었지. 건조한 식감을 덮을 길 없었지만 밀가루 특유의 맛이 그런대로는 무난하다. 비슷하게 기대 없이, 아무 의미 없이 티비를 켠다. 케이블 채널은 두 철은 족히 지난 예능의 재방송을 해주고, 혼자서 보내는 주말의 시작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고, 이만큼 비가 오는데 배달 음식을 시키는 건 역시 무리일까 맥없이 고민을 흘려보내다가.

 

베개 옆에 나뒹굴고 있을 제 폰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짧지만 짙은 진동. 드문 일이라는 생각부터 퍼뜩 들었다. 나는 대개 무음으로 설정해둔다. 예외는 몇 되지 않았다. 급한 일 있을 때나 뜸들이며 전화하는 아버지, 툭툭 용돈을 보내주는 것이 퍽 기꺼운지 종종 먼저 애교를 부려오는 열여섯의 사촌 동생, 하도 주말 연락의 중요성을 강조해 져주는 마음으로 추가해준 전전 직장의 상사. 그리고 제일 친한 친구 셋.

 

그럼 그 중 누구의 문자 메시지일까.

 

식빵을 여전히 우물거리는 채 방 안으로 발을 옮겨, 팔을 뻗고, 상단의 알림을 확인한다. 놀랐다. 그러나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내용보다도, ‘이 사람도 소리가 오도록 설정을 해두었나’하는 의아함이 제일 먼저인 놀람이었다.

 

[ 갑자기 형 번호로 연락해서 미안해요, 누나. 저 상혁이 형 동생 상훈인데 기억하세요? ]

 

그도 그럴 것이 친구의 전 애인 번호로 문자가 왔질 않는가. 이어지는 내용을 몇 번이고 느릿하게 훑고서 답장 없이 문자함에서 나왔다. 그제야 그 번호가 왜 예외로 설정되어 있는지도 대략 기억이 났다. 이제 제 애인이랑도 제법 낯도 익고 친해지지 않았냐며 장난스런 낯으로 마치 제 것처럼 폰을 가져가 조작하던 친구의 옆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던 터다. 유난스럽다 생각했으나, 그래봤자 사소한 것이나 바꿔두겠거니 싶어 따로 말리지는 않았다. 직후에 ‘사건’이 터졌던지라 한참이고 몰랐다가 지금에야 눈치를 챈 것이지. 뭐, 놀랍지는 않았다. 친구도 아니고 친구 애인까지 따로 알림을 등록해둘 것이야 있겠냐마는 그 얘야 원래부터 천연덕스럽다 못해 이상한 데서 엉뚱한 친구였다. 학창시절부터 저에게 유한 것쯤 알고 있었으니, 제법 어리광 피우듯 이것저것 해두곤 언제나 사소한 장난을 알아차리나 한껏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그다지 독특한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데, 오히려 꽤나 덤덤한 편이라 생각하는데도 유독.

그래서였다.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먼저 연락하던 애가 한동안 연락이 없어도 새로운 식의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싶어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도. 거의 삼 주가 지난 다음에야 그 아이에게, 그 아이의 부모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야겠단 생각을 했더란다. 결국 그 아이가 사라진 지 한 달이 가까울 때에야 경찰은 공식적으로 수사에 들어갔다. 늦어도 너무 늦은 수사였다. 그 아이가 사라진 날은 방학을 빙자하여 장기로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 참 좋은 여름의 어느 날이었고, 직후의 한동안은 때늦은 장마철이었다. 웬만한 증거도 빗물에 쓸려 흙길에 섞여들었을 법한. 그토록 한참 후에야 핏자국 하나 없이 온통 물난리가 난 산기슭에서 친구는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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