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아이의 장례식은 총 이틀이었지만, 그 아이의 단짝이라 불릴 만한 이들은 죄다 첫날만 조문했다. 상주는 물론 친구의 부모님이었지만, 두 분은 죽은 딸의 친구들이 새로이 신을 벗고 얼굴을 보일 때마다 도로 울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작 친구의 애인이 상주처럼 가라앉은 얼굴로나마 살뜰히 손들을 챙기었다. 친구의 바람대로 아예 일정을 잡고 같이 만난 것만 열 번은 조금 못 될 테고, 사소하게 얼굴 맞댄 기회는 훨씬 많은 사이였다. 이름을 부르며 인사해오는 친구의 애인이 얼마나 수척한 낯이었는지, 같이 갔던 다른 동창 하나는 그래도 저만한 애인감은 역시 없다고 익숙하게 남자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 순간 평소처럼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지킨 이유를 꼽으라면 다름 아니라, 그래보았자 ‘전’ 애인일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에. 동창들 사이에 떠도는 낯선 적막을 알아챈 화자가 따라 입을 다물었을 때 같이 온 무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보고픈 사람 없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일어났었다.
친구는 모 유행가ㅡ 친구와 애인을 함께 자주 만났더니 정작 그 둘이서 정분이 났다는 노래 가사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나를 애인과의 만남에 자주 동석시켰다. 실제로 그 노래를 농담 반 의아함 반으로 상기시킨 것도 그 애와 나를 동시에 아는 친구들이었다. 그때 그 애는 깔깔 웃음을 터트리는 것으로 대꾸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했지. 그 애는 제 애인을 참 좋아라 했다. 그러니 설마 친구와 애인이 바람이라도 나기를 바라서 그랬겠는가. 애인을 바라보는 친구의 얼굴은 언제나 티끌 한 점 없이 밝기만 했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우리 셋은 자주 만났다. 친구는 언제나 이유를 말하지 않고 자리를 마련했고, 제 시간에 나타날 것을 당연하다는 듯 기대했다. 역시 한 번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러기를 바라는 기색을 읽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았다. 서로 말하지 않았다. 친해서? 너무 친하다 못해 텔레파시가 통할 정도의 끈끈한 우정이 있어서? 그만큼 서로를 신뢰해서?
그런 거였다면 동화 같기라도 했을 텐데,
나를 무너뜨린 너야.
나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 아이도 한 번도 알아차렸음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 아이는 모른 체 했고, 나는 그 모른 척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우정만이라도 유지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 아이가 그러길 바라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점부터 오히려 순수한 의미의 우정은 퇴색된 수준도 아니요, 물거품이 된 수준이었을 테다. 한 쪽은 아무렴 어떠냐 싶었고 다른 한 쪽은 조마조마했다. 그래, 나는 그 아이의 애인이 싫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으나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그러했다. 그 아이가 세 사람만의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한 것도 그 어느 순간 이후의 시점부터였다. 그 아이의 몹쓸 장난이었다. 장난처럼 가볍고 순진하게 무마하고 싶어? 그러니 어쩔까, 대신 장난감처럼 쓰러졌다.
애인 앞에서 언제나 맑고 아름답던 그 아이의 눈이, 또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향할 때마다 복잡하게 얽혀드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 했단 말이다. 어느 날 한 쪽만 붉어진 뺨으로 한참을 우물거리던 그 아이가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다음날의 애인과의 자리에 다시 동석시켰을 때 내가 침묵해주었던 것이 그럼 무엇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오지 않아도 되었으니, 이쪽의 가시밭길로 오느니 차라리 그쪽의 어그러지는 잔상 붙잡겠다는 그 아이를 소중하게만 대해주길 바랐는데도.
나는 한 순간도 몰랐던 적도 모르고자 했던 적도 없다, 그저 모른 체 했던 것뿐이다.
빗소리는 그 날 밤이 되도록 쉬이 그치지를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오늘 들은 이 사건 역시 고요히 묻혀버릴 것을 잘 안다. 세상에는 일상처럼 너무나 자주 복잡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저마다의 특별한 사정들을 품고 있다. 애당초 저와는 미묘하게 거리가 있는 일이다. 따라서 별달리 무엇도 하지 않기로 했다. 제목조차 붙일 필요 없는 한낱 여름 어느 날로서, 그런대로 흔하게 지나가도록 할 셈이다. 그렇게 내가 들은 사건의 파편은 오직 나만이 소유하는 일련의 상념이 되어, 기어코 특별치도 않은 비밀이 되리라. 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기쁘지 않을 리 없지. 그러니까 별 건 아니고, 굳이 배달할 사람을 곤란케 할 필요도 없이 찬장에서 딱 하나 남은 컵라면을 발견한 걸 이르는 말이다. 나는 기쁘지 않을 수 없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