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쏴아아아ㅡ 세찬 빗소리와 함께 눅눅한 물비린내가 코 끝을 스쳤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일으켰다. 밤새 자느라 뒤척이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풀어주고는 창문을 가리던 커튼을 젖혔다. 햇살 한 줌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꽉 찬 비구름에 어두운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이젠 익숙했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비가 온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오늘의 날씨입니다. 전국 강수량은 대략 5~10mm 정도로…….”
“띵!”
전자레인지에 넣어 놨던 인스턴트 밥이 저를 꺼내 달라고 경쾌한 종소리를 냈다.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던 중이었기에 급하게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 나와 밥을 꺼냈다. 욕실에서 주방까지, 주방에서 간이 식탁까지. 좁아 터진 원룸 방바닥 반이 엉성히 엮여 있던 수건 사이로 삐져 나온 물방울들로 뒤덮였다.
“에이 씨, 진짜.”
가뜩이나 몸이 힘든 아침, 머리에 얹었던 수건을 바닥으로 툭 떨구어 슥슥 발로 닦아내곤 냉장고로 향해 엄마가 싸준 반찬 몇 가지들을 꺼내 식탁에 두었다. 이렇게 습한데도 아직 곰팡이가 피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다들 외출하실 때 우산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의 날씨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매일 빠짐없이 주구장창 내리는 비인데.”
괜히 퉁명스레 중얼거리고는 틀어 놓았던 핸드폰 DMB를 꺼버렸다. 참 세상 좋아졌다, 너무 좁아서 TV하나 놓을 곳 없는 이 집에서도 TV를 볼 수 있다니. 너무 나를 반사회적인 사람이라 생각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적어도 매일 비가 오는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아무리 제습기를 틀어 놓아도 사라지지 않는 눅눅함과 습한 냄새. 매일 들고 가야하는 거추장스러운 우산과 심지어 종종 잊어버렸을 때 나가는 추가 비용까지. 빗소리에 감성 젖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자그마치 2년째다. 이 비가 반년쯤 지속되었을 때는 정말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알았다.
화장할 시간이 없어서 맨 얼굴에 틴트만 바른 채로 집 문 밖을 나섰다. 지금 시각은 9시반, 고등학교 때는 어떻게 8시 등교를 했던 건지 늘 신기해 하며 학교에 간다. 팡, 하고 투명한 싸구려 장우산을 펼쳐 내 머리를 가린다. 아, 아까 했던 얘기를 다시 계속하자면 이 비는 2년동안 오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수능 끝났을 때 오기 시작해서 지금 이 대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온 거니 2년보다는 몇 달 더라고 할 수 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수능이 끝난 고3에게 비를 내려 주실 수가 있나. 덕분에 놀이공원은 실내만 다니고 여행 같은 것도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때 아닌 장마겠지, 생각했던 것이 한 달, 두 달 전 지구를 통틀어서 지속되었다. 과학자들은 비상이 걸리고 뉴스에서는 홍수와 범람에 의한 멸망을 얘기했다. 물의 양은 항상 일정해야 하는데 내리는 비의 물은 어디서 오는 거고 땅에 젖은 물들은 어디로 날라가는 건지 바다는 신기하게도 해수면을 유지한 채 찰랑거렸다. 또 항상 장대비가 쏟아지는게 아니라 우산을 쓰기 애매할 정도로 톡톡 쏟아지는 비가 일주일 동안 지속되기도 했었다. 가뭄을 걱정했던 지역들은 처음엔 좋아했지만 이후 농작물들이 하나 둘 썩어 들어가면서 경제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채소 값은 천정부수로 오르고 어느덧 하우스 농작물들만 볼 수 있게 되었다. 놀라운 건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비가 그치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하면 이런 일들은 평소에도 있었던 일들이라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이제 사람들은 멸망에 대해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우산 팔이와 환경 관련 직종이 유망직업이 되었다는 것 말고는 사람들은 살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