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쏴아아아, 세찬 빗소리와 함께 눅눅한 물비린내가 코 끝을 스쳤다. 며칠 째 이어진 비는 눅눅함에 사람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애매하게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설희의 기분도 엉망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원래도 좋은 성격은 아니었지만, 유독 더욱 날이 선다.
서기 2028년, 10년 전인 2018년부터 이 땅에 신이 강림하였다. 그 신은 예수도, 부처도, 알라도 아닌 전혀 이름 모를 신이었으며, 수많은 종교인들은 자신의 신을 부정하거나 또는 그 이름 모를 신을 부정했다. 이름 모를 신은 자신들이 제일 우월하다 여긴 인간들에게 충격을 선사하고는 한 인간을 지목하고 사라졌다. 그 인간은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한 50대 여성으로, 이름 모를 신에게 지목 당한 이유조차 모른 채로 신을 부정하던 신도들에게 살해당했다.
신은 1년에 한 번 같은 날, 같은 시에 세계에 강림해 인간 하나를 지목하는데, 이 지목은 국가, 인종, 성별, 노소, 학력, 재력 등에 상관없이 무작위로 이루어졌다. 각 국가들은 지목이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모조리 허사로 돌아갔다. 종교단체에서는 이름 모를 신의 심판이라는 주장이 나왔으며, 시민단체에서는 국가에서 지목 당한 인간의 신변을 보호할 것을 주장했다. 국가는 불안해하는 시민들을 위해 시민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네 번째로 지목된 남성을 국가가 지정한 시설로 불러들여 보호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후, 지목 당한 남성의 반경 10km 이내의 인간이 모조리 실종되는 일이 발생했다. 언제, 어떻게 그들이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CCTV는 어느 시점부터 먹통이 되어 기록을 멈추었다. 의문스러운 점은 사라진 인간들의 남은 흔적에서 놀람이나 두려움, 공포 따위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일상생활을 하다 갑자기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고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인간실종 상태에 전세계는 경악에 물들었다. 종교계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종말이 찾아오리라 여겼다. 두려움의 대상이 된 신의 지목을 받은 인간은 그 즉시 외딴 섬으로 끌려갔고, 홀로 사라져야만 했다. 그리고 10년 째, 열 번 째의 인간이 지목될 차례였다.
2018년 대한민국 서울, 모두가 핸드폰과 TV,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10년째인 오늘, 자신이 걸리지 않길 바라며 모두가 매체에 온 신경을 집중하던 그 때, 반지하 원룸에서는 한 20대 여성이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깥의 소란은 자신과 상관 없다는 양, 반쯤 감긴 눈으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 … 아.”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보나마나 그 뻔한 대학동기들 단체 카톡방에서 무섭다느니, 어쩐다느니 얘기하고 있겠지. 설희는 방금 눈을 떴음에도 퍽 지친 눈으로 핸드폰을 멀리 던져버렸다. 귀찮게. 조용히 중얼거리곤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개어놓곤 화장실로 슥 들어가버렸다. 간만에 푹 잤다는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나온 설희는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던져둔 핸드폰을 찾았다. 부재중 전화 21통, 카톡은 300+, 문자메세지는 70통 정도. 평소 그녀에게 오는 연락의 빈도수를 세어보면 절대 이런 일은 생길리가 없었다. 의문을 풀어주듯 바로 다시 걸려오는 전화. [엄마]. ….
“여보세요?”
“아이고, 설희야…. 우리 설희 어쩌면 좋나, 아이고….”
“뭐야, 무슨 일인데.”
“너란다, 너. 올해 찍힌게!”
“… 뭐?”
통곡하는 핸드폰 너머의 울음소리는 아랑곳 않은 채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올해 스물 셋, 대학 졸업반인 설희는 서울에 올라와 취업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첫 ‘지목’은 그녀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뭣도 모르고 뛰놀기 바빴던 나이었으나 그 해 유난히 시끄러웠던 기억은 있었다. 나중에서야 그게 지목인걸 알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고 벌써 10년이 지났기에 무감해져 있었다. ‘설마 내가 걸리겠어.’ 안일한 마음가짐이었으나 세상에 인간은 많고 많았으므로 굳이 자신이 걸리지 않을거란 근거 없는 믿음이었다. 남의 일이었고, 그만큼 무관심했다. 사라진 사람들이 죽었다는 보장도 없으니 진실로 ‘천국’에 간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을 정도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