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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설희는 담담했다. 특별한 미련같은건 찾을 수 없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평범하게 학교를 다녔고 평범하게 취업준비까지 했다. 모두가 바라는 평범함일텐데, 설희는 어딘가 늘 공허했다. 표정은 사라졌고 성격은 무뚝뚝해졌다. 그렇기에 곧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 생겼음에도 평소처럼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 터였다.

 

다음날, 정부 기관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만 17세 이상은 의무적으로 주민등록을 해야 하는 만큼,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추적이 가능하단걸 알고 있기에 그다지 놀라진 않았다.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자는 정말 사무적으로-감정이 단 하나도 섞여있지 않은 표정으로- 해야 할 일을 읊었다. 최소한의 짐을 싸 사흘 후 전라남도의 작은 섬으로 출발할 것, 이동수단은 제공되며 무료인 것, 그 곳에는 열흘 치 식량이 있으며 연락을 할 통신 수단이 있다는 것, 그럴 리는 없겠지만-정말 그대로 말했다- 살아남는다면 연락이 오는 즉시 정부에서 이동수단이 지원될 것이며 평소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지시사항을 어길 시 강제 수단이 동원될 수 있다는 것. 설희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가야만 하니까. 자신이 있는 곳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이었다.

 

이동수단은 배였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섬까지 가야만 했다. 설희는 항구에서 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자주 지나쳤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나타난 지목자였으니까. 세상에, 울지도 않는 것 봐. 독하네. 그러니까 지목 당했겠지. …. 수근거리는 속삭임이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아 짜증이 치밀 무렵, 집으로 찾아왔던 그 표정 없는 공무원이 배로 안내를 했다. 뱃멀미로 고생을 하는게 차라리 저 수근거림을 듣는 것 보다 나아 빠르게 배에 승선했다.

 

섬까지 가는 길은 지옥불밭 길이었다. 쉼 없이 흔들리는 선체에, 불 나는 핸드폰에, 맛대가리 없는 식사에, 최악의 멀미까지. 차라리 얼른 혼자 있고픈 마음에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이쯤 되니 그 빌어먹을 신 놈에게 분노가 차오르게 된다. 빌어먹을, 왜 하필 나를 골라서 이 고생을 하게 만들어. 그렇게 5일째의 하루가 지나갔다.

 

섬은 생각보다 평화로웠다. 나무로 뒤덮인 섬과 그 중턱에 있는 펜션 하나. 누군가의 별장이었을 이 곳은 설희의 무덤이 된다. 무덤 한 번 멋지군. 덤덤하게 그리 생각했던가. 한가로운 밤, 테라스에 앉아 별이 쏟아져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누굴 생각했나. 부모님? 친구들? 동기들? 어쨌든 그녀의 마음은 그녀만 알겠지만.

 

마지막 날, 여전히 불에 타는 것 같은 핸드폰은 애써 무시했다. 미련 한 점이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 차라리 핸드폰을 바다 속으로 던져버릴까, 심도 높은 고민을 한 적도 있었다. 아무리 공허하고 무뚝뚝하다 한들 인간은 인간이었다. 몇 번이고 손이 가려하는걸 애써 참아냈다. 미련이 생길 법 하면 명상을 하곤 했다. 어차피 가야할 걸음이라면 미련 없이 떨쳐내고 싶었다. 설희는 성인(聖人)이 아니다. 범인에 불과했다. 죽음 앞에 두려움이 없을 리가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칠 수 있었다면 몇 번이고 도망칠 것이었다. 섬 안이라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설희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D-day. 설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했다. 밥알 하나 하나 꼭꼭 씹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은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죽음을 앞둔 인간이 얼마나 초연해질 수 있는지, 그 옛날 죽음 앞에서도 대쪽같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했던건지 설희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선택받은 인간이로구나.’

 

머리 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당황도 잠시, 때가 됐으려니 눈을 감았다. 만족스러운 삶이다, 가만 생각하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자신이 떠올린 질문일지, 그 ‘신’이라는 놈이 물어본 것인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채 설희는 대답했다.

 

“… 그래.”

 

죽음 앞에 반드시 초탈해질 수는 없는 법이다.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든 것들은 살 자격이 있다. 앞의 아홉 명이 어땠는지는 모르나, 자신은 충분히 만족할만한 삶을 살았다. 나 하나로 인해 여럿이 죽는 것 보다야 낫지 않은가.

 

‘대답은 잘 들었다.’

 

몸이 환한 빛으로 둘러싸였다. 죽는가보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허무하게 빛은 꺼져버린다. 그 어떠한 말도 없이, 그대로. 설희는 그대로 홀로 방에 남겨졌다. 얼떨떨함도 잠시, 정부 기관으로 연결되는 직통 전화를 들어올렸다.

 

[…]

 

신호음이 가지 않는다. 핸드폰을 본다. 조용하다. 핸드폰을 낚아채 통신상태를 확인해본다. 아무 것도 뜨지 않는다. 긴급발신 화면만 떠있을 뿐이다. 전기가 끊겼다. 수도조차 연결되지 않는다. 설마, 사라진다는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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