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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쏴아아아-

  세찬 빗소리와 함께 눅눅한, 물비린내가 코 끝을 스쳤다.

 

  피어나던 녹음의 계절이 지나고 익어들어 기우는 계절이 접어들어감에 쏟아지는 소나기는 한기를 몰고온다.

너른 방안, 꽤 두툼한 베이지색의 가디건을 입고있음에도 옷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어온다. 창 너머로 흘러가는 먹먹하고 흐릿한 구름 한번, 창에 비춰지는 검청색의 머리를 한번. 김이 흐릿하게 올라오는 커피를 한 모금 입술로 흘려보낸다. 하루의 일과 중 가장 여유있는 시간이었고 저 혼자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몇 안되는지라 이럴 때가 아니면 도저히 짬이라 할만한 것이 나질 않았기에 벽시계의 대바늘이 숫자 4를 가리키는 이른 시간에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나온 것이었다.

 

  새벽의 푸름마저 삼켜버린 거뭇한 빗속에서 눈을 감으면 쏟아지는 빗소리, 지직거리며 조율되는 라디오의 잡음처럼 느껴져 어느새 뒷덜미를 간질이는 짧은 뒷머리를 매만진다. 움직이는 발걸음, 흰 벽면을 따라 거닐면 벽에 붙은 고동색과 검은색의 액자들이 불규칙적으로 걸려있어. 방안의 정갈한 것치고는 산만해보이기 그지없다. 손을 뻗어 그 액자의 테두리들을 툭 쳐내는 것들은, 각기 다른 교복을 입은 사람들의 단체사진, 형형색색의 풍등들.

 

  차가운 맨발끝을 제 종아리에 문지르고는 책상에 앉아 서랍속에 넣어뒀던 종이들을 꺼내어

백색 종이의 가장자리, 노란 꽃잎 하나를 매만지고 나면 책상위의 검은 펜을 들지만 그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멈춘다.

 

  강바람에 붉은 국화와 제 손을 덮었던 장갑을 흘려보낸지도 2년이 지났다.

해가 지날 때마다 혼자만의 추모아닌 추모를 보냈고, 단 하루도 잊은 날이 없다.

살기 위한 발악으로 올라섰지만...제가 원하는 것을 얻고난 이후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허무함이 몰아쳤다.

PUPPET, 그 이름을 가진만큼 군림을 원하였으나 정작 올라서면 올라설 수록 살을 파고드는...외로움. 이걸 외로움이라 칭해야하던가.

 

  이 자리에 가지고있기에 더 없이 견딜 수 없는 감정들만이 축적되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는 이름을 되뇌지않으면 그 막연한 감정들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비정해야하고 단호해야한다. 두루뭉술한 것은 분명 제 역린이 되어 언젠가 제게로 돌아올텐데. 그것을 잘 알면서도 자꾸만 무너져내려간다. 시시때때로 멍하게 바라보는 액자속의 앳된 얼굴들이, 그 중의 하나가 저를 그리 만들었다. 정같은 거 안 들었다고 생각했지, 꼭 이렇게 시간이 지나 이제는 닿지않는 곳에 있는 것들을 잡고싶어하면 어쩌자는 건지.

 

  여기까지 오는 내내 위태로운 이 감정들과는 상관없이 목적을 따라왔다.

머리속에서든, 마음으로든 정리되지않는 부분은 그저 그냥 안은 채로. 그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책상위에 여즉 목걸이의 형태를 한 꽃잎들을 바라보면, 석탄의 빛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부정도 해봤고, 수긍도 해봤으나 어차피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네 이름을 그리도 많이 되뇌었는데 어떻게 그걸 여태 묵혀뒀는지.

선명하게 그려지는, 학대의 현장. 울부짖을 수 밖에 없었던 카메라의 방향.

영향받지않을 거라 굳게 믿었던 제 감정선이 녹아들어 갈피를 못 잡던 도중, 검은 장갑너머를 잡아오는 손.

내밀어지는 꽃송이들. 저는 단 하나도, 네가 준 것 어느 것 하나 잊지도, 버리지도 못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목걸이를, 커피의 흐릿한 기운이 식어가도록 바라보다 겨우겨우 멈췄던 손을 움직여

종이를 콕콕 펜 끝으로 몇번 두드리고나면 흰 종이 위, 검은 글자들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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