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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ㅡ. 세찬 빗소리와 함께 눅눅한 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위에서 빗발치는 그 가시 같은 빗방울들이 제 몸에 닿아 흩어지는 것이 선명히 느껴졌다.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가 공허하게 그 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어있는 검은 하늘에는 칠흑 같은 구멍이 있어, 그 속으로 누군가가 물을 뿌려대는 건지, 어디서 빗방울이 눈에 보였다가 빠르게도 내려와 그 맑은 땅을 더럽혔다. 저 위에 있는 그 사람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지, 나를 위로하는 건지. 그저 날카로운 물방울을 흩뿌리면서 조용히 덮으려고만 하였다.

 

 

 

쏴아아아ㅡ. 세찬 빗소리와 함께 눅눅한 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하늘에서 내리는 그 촉촉한 물방울들은 주변을 불쾌하게 만들어주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의자에 앉아 흐려진 창을 바라보았다. 맑은 물이 흐트러져 빛들을 산란시키는 그 아지랑이들을 바라보았다. 닦아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또한 예쁜 울림들이었다. 눈을 감았다. 그 어둠 속에서 선명히 들리는 백색 소음이 기분 나빴다. 이 소음을 떨쳐내고 싶었다. 온몸을 갉아먹는 그 벌레 같은 감각이 발끝에서 부터 기어 올라왔다. 이런 고요를 부수고 싶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집에 나온 순간부터 나쁘지 않은 날이었다. 하늘은 맑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향수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다양한 향이었다. 벽에는 낙서 하나 없이 오톨도톨한 화강암이 박혀있었고 덕지덕지 시멘트가 발려 그 틈을 메꾸고 있었다. 옆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는 그 작은 귤나무에도 청색 귤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푸른 잎 아래로 묵직하게 맺히는 그것이 무르익으면 얼마나 맛있게 될지, 그 한입을 베어 물 아저씨가 조금은 부러워졌다. 괜히 그 귤을 바라보다가 살포시 그 어린 것을 떼어내었다. 껍질을 벗기고 그 알맹이를 눌렀다가 다소곳이 그 밑에 모르는 척 내려놓았다. 걷는 길마다 혼자만의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평온함이 가득하였다. 실로 아무것도 이상할 것 없는 날이었다. 평범하디 평범한 날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집이라는 공간은 가장 안전한 곳이어야만 했었다. 그곳에서 쉬면서 안식을 취하고 다시 사회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기분을 만들어주는 날이었어야만 했다. 우리의 집은 허름했다. 벽지는 조금 까졌었다. 가끔은 그 안에서 곰팡이가 보인 날도 있었다. 벌레도 간혹 지나갔었다. 하지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낙서 하나 없이 깨끗하게 자라 푸르게 인사하는 그 작은 생명과 제 옆에서 웃음 지으며 살아가는 그 여린 마음이 제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행복했고, 평온하였다. 실로 아무것도 이상할 것 없던 날들이어야 했다. 평범하디 평범한 날이어야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사르륵하고 넘어가는 그 예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종이끼리 맞대어 나는 소리가 예쁘게도 일어 귓가를 간지럽혔다. 손때가 타 누렇게 변해버린 그 테두리를 매만지다가 검은 글씨를 마저 읽지도 않고 팔락 넘긴다. 그리고 한 번 그 문단의 묶음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또 한 번 넘겼다. 이 문단의 마지막 단어는 무엇인가를 살펴보다가 또 한 번 넘겼다. 팔락거리면서 넘어가는 그 글자들의 나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옅은 먼지가 휘날리게 책을 덮었다. 도서관 한켠에 밖이 보이는 창문에 톡, 하고 빗방울이 맺혔다. 여린 그 물방울은 창문 위에서 바스러져 고스란히 그 자리에 남았다. 잠시 그 물방울을 바라보다가 그 위로 괜히 손가락을 문대본다. 닦이지 않는 그 조각들을 가만히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문드러진 마음은 돌이킬 수 없었다. 달게도 익어가던 그 아이는 매일 밤 벽지를 뜯었다. 바스락거리면서 뜯어져 내려간 그 벽지 안에서는 썩어들어가던 시멘트 검댕들이 함께 나왔다. 낡아 해진 그 이불을 쥐어짜면서 그 곪은 껍질을 씹어 삼키고 묵직했던 그 순수함을 스스로 도려낸다. 공허해진 그 중심으로 모든 것들이 말라만 갔다. 여린 그 귤은 제 화분 안에서 바스러져 무너졌고, 그대로 모든 것들을 포기하였다. 푸르던 잎 위로 톡, 빗방울이 맺혔다. 하지만 그 물은 산산조각이 나선 물방울이 아닌 수십 개의 가시가 되어 심장을 들쑤셨다. 싱그럽게 어르고 달래며 맺어온 그 결실은 말라 비틀어져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장소마저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잎싹이 꺾였다. 그 잎싹이 꺾이고 나서야 이 생명이 혼자서는 이겨낼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가만히 그저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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