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거두었던 단장님의 싸늘한 시신 앞이었다.
최초의 기억은 이 사람의 앞에서 시작되었다. 원래의 부모가 죽었던 건지, 나를 버렸는지, 혹은 잃어버렸는지. 필시 너무 어렸던 탓이겠지. 당시의 나에게는 그 덩치는 고릴라나 그런 비스무리한 걸로 보였기에 무서워서 엉엉 울고 있었고, 난처해하면서도 그런 나를 둥기둥기 달래며 업어다 주었던 사람이 단장님이었다. 우리들의 보스는 갈 곳 없는 어린아이를 기사단에 들여서 키우는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었다.
검을 쥔 채로 사후경직이 시작된 손등 위에 제 손을 포갠다. 이제 갓 청년이 된 제 손과, 오래 전장을 누비며 지휘하던 노련한 검사의 손은 상상이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굳은살이라거나, 자잘한 상처라거나, 그런 것 외에도 긴 세월의 폭이 겹쳐진 두 손 사이에 존재했다. 자신은 기사단에 들어오기 전의 생활은 무엇 하나 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기사단원은, 동료들은 제 가족이고 형제이고 남매였으며, 우리를 이끌던 이 사람은 저에게 부모였다. 차디찬 손을 힘주어 잡아보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빗물 사이에 섞여들었다.
“아아……흐, 윽, 으아아아…!!”
흐느끼는 울음은 거센 빗소리에 묻혀 새어나가지 않는다. 울부짖는 소리는 절규와도 같았으나 누구도 듣고 있는 이가 없었다. 이십 년에 가까운 나날을 함께 성장하고, 단련하고, 울고 웃으며, 배우고 싸워나가고, 앞으로도 그렇게 지낼 생활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족들이 한 순간에 처참한 주검이 되어 줄지어 누워 있었다.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혼자. 저를 감싸준 이들을 두고서 오롯하게 홀로이.
청년은 어렸다. 기사의 서약을 마치고, 정식으로 기사단의 일원이 되었던 성년식으로부터 아직 계절도 바뀌지 않은 날이었다. 홀로서기를 하는 단원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기사단에서 자랐던 청년은 떠날 생각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혼란과 충격에 빠져 그저 목 놓아 우는 청년을 가리듯이 장대비가 쏟아졌다. 퍼부어지는 빗줄기를 온 몸으로 맞으면서, 잦아들지 않는 감정을 청년은 정신없이 오열하며 토해냈다.
줄곧 비를 맞고 있던 탓에 기력이 떨어졌던 모양이다. 까무룩 놓았던 의식을 다잡을 무렵에는 비가 완전히 멎어 있었다. 우중충한 하늘을 넋 놓고 올려다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흐들거리며 몸을 일으키려고 땅을 짚은 손에 무언가 절그럭 걸렸다. 무심코 손에 잡힌 물체를 들여다 본 청년의 동공이 한 순간에 확대된다. 문양이 그려진 팬던트. 전투가 한창이던 도중에 누군가가 흘렸던 물건인지. 청년은 그 문양을 잘 알고 있었기에, 팬던트를 쥔 손에 으스러져라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공공연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기사단이 소속된 영지는 해변가에 위치하면서, 무역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며 새로운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여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특히 이상하리만치 전쟁에 필요한 물품들을 영주가 사들이는 전황이 포착되었다. 이미 기사단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낯선 무인들이 영주의 성을 출입했다. 방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에 의문을 품은 단장님이 영주의 속을 떠보겠다고 했던 게 엊그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