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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아직도 그 꿈을 꾸니."

"네, 여전히 그 꿈을 꿔요. 사실 꿈은 아닌 것 같지만… 이젠 2층으로 가지 않아도 내가 그 세상에 있는 것 같아요. 그 발레리나들이 있는 곳 말이에요."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투박한 손으로 쓰다듬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네가 본 것은 사실, 꿈이 아니란다."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여태 부정당한 것들이 인정받자 드디어 자신이 본 게 사실이라는 게 증명된 기분이었다. 기쁨도 잠시, 할아버지는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할아버지도 그걸 봤어요?"

"봤지. 보았어. 그 세계는 거울 속 세계란다. 원래는 보이지 않아야 정상인데... 또 무슨 일이 났나 보구나."

 

할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흥미로웠다. 그 말인즉슨, 거울 속 세계와 현실 세계는 분리되어 있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겨 그 두 세계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진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60년도 더 전에 이런 일이 또 있었다고 했다.

평소라면 믿지 않을 이야기임이 분명한데 할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는 나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내가 바로 그 기묘한 일을 겪은 장본인이지 않은가.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괴로워만 해야하는지. 그게 궁금했다. 할아버지는 대답으로 오늘 밤은 자신과 함께 자자고 했다. 그러면 알게 될 것이라 말했다. 나는 처음으로 새벽이 기다려졌다.

 

그 날 새벽은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깨워서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검지를 입술에 대고 쉿-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서가는 할아버지를 쫓아갔다. 2층으로 갈 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조용히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우리 집 뒤편에 있던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을 향해 갔다. 저런 집이 원래 있었던가. 어쩌면 있는 것도 같았다. 할아버지는 잠겨있는 문을 익숙하게 열고 나를 이끌어 2층으로 올라가셨다.

 

"할아버,"

"쉿-"

잠깐의 목소리도 허용할 수 없다는 듯 할아버지는 내 입을 다물게 했다. 어두운 집안을 밝히는 건 할아버지가 들고나오신 손전등뿐이었다. 집안에는 오래된 나무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만 들렸다. 들쥐가 돌아다니는 소리도, 길고양이가 친구를 만나 인사를 나누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민트색 페인트가 벗겨진 계단 끝에는 우리 집과 비슷한 2층의 풍경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손전등을 끄고,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줄 알았던 방은 달빛으로 어스름이 보이는 정도로 앞을 비췄다. 창문 너머로는 익숙한 우리 집이 보였다. 창문 너머로는 2층 방의 창문과 뒤뜰로 나오는 문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그때까지도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밖을 응시했다. 밖이래 봤자 방금 설명한 것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우리 집 한가운데를 세로로 주욱 그어놓은 밝은 노란 선이 생겼다. 내가 처음으로 2층의 빈방에 올라갔을 때 본 것하고 똑같은 그런 빛이었다. 다만 그 빛은 좀 더 확실했고 진하기도 진했다. 그다음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입을 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던 창문이 쨍그랑! 하고 깨졌다. 뒷문으로 나온 할아버지는 노란색 선이 있는 곳으로 가더니 노란 선을 지남과 동시에 사라졌다. 나는 그 동시에 2층에서 깨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후 내가 창문에서 멀어지고 할아버지는 한참 후에 다시 노란 선을 기준으로 나타나셨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뒷문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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